2008년 7월 25일 금요일
황성신문과 독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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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24일 목요일
the evidences of Korean Dok-do, 成宗實錄 』
成宗實錄 』卷 一百二十五, 成宗 十二年 一月 甲申條
http://www.historyfoundation.or.kr/OldBook/OldbookView.asp?p_gubun=oldbook&FIELD=&KEY=&PAGE=4&IDX=95
(활자본) 永安道觀察使李克墩 上三峯島搜得之策 一 東北之海 風浪險惡 非他海之比 且不知三峯島 的在何處 差人入送爲難 但本道人民 皆是遷徙之徒 撤擧家産 不以爲難 性又愚惑 信聽誑語 若不扵此時 搜得此島 明其背國之罪 則愚民必曰國家大擧欲討 而終不得 他日我雖徃投 國家終無乃我何 則非細故也 倘有水旱之災 兵戈之役 則必有逃徃背國之人 臣意 妄謂如今年招撫使之擧 則倘有蹉跌 其悔甚大 宜如敬差官曺偉時例 令本道自望人三十餘名 齎諭書入送 探知島之所在 勢可招撫則招之 如不可敵則更遣師徃討 亦爲未晩 且徃返之間 縱有所失 不至大悔 一 前者徃來者 或云遙見 或云不得見 莫辨眞僞 今也 遣人搜覓 如終無此島 則將初發言金漢京輩 明其誑語惑衆之罪 置之極刑 傳屍一道 以示衆目 則愚民亦知三峯島之必無 而其胥動之惑 自解 一 如明年春節入送 則須扵正月晦時 諸事畢辦 二月初 到浦 待風爲便 待風只數十日之事 如遷延數旬 値霖雨 則無風海暗終無發船之理 命議于領敦寧以上 鄭昌孫沈澮尹士昕尹弼商洪應盧思愼李克培尹壕議 三峯島搜覓事 從第一條 令本道 自望人三十餘名 齎諭書入送 探覓島之所在 的知在某處 則更遣使招之 如或不從 遣師徃討爲便 從之
here is a comment.
"令本道 自望人三十餘名 齎諭書入送 探覓島之所在"
Take 30 persons from this island (本島), then make them find the 三峯島.
hum.....
Then, what is the 三峯島? and which island is 本島?
We, Korean always say the 三峯島 is the "dok-do".
Because from the east cost of Korea, there is only one group of islans called "Ulleung-do" and this "Dok-do".
'Juk-do' is just one of group islands called "Ulleung-do".
go to http://en.wikipedia.org/wiki/Jukdo_%28island%29
Some Japanese say there is another island , the phantom island. There is no clear proof for the phantom island.(like a folklore)
But if you read the description of 三峯島in the next documents, you can easily understand that island is "Dok-do".
I will translate some of part to describe the 三峯島.
And also if you want to choose 30 persons for expedition, the island must be big inhebitable island.
There is only one big inhabitable island, the "Ulleung-do" where government officer can take 30 people for only the expedition.
There are only two islands, "Ulleung-do" and "Dok-do".
Because they didn't need to explore to find this 三峯島, if this island is loctated near this 本島,Ulleung-do.
Juk-do lies 2km near from "Ulleung-do".
And we can't say now about the phantom island. Phantom is just an empty talk.
So,
Therefore the 三峯島 is the "Dok-do".
Also the next document which describe more precisely the "三峯島" can help us to confirm our theory.
(The below Korean sentences are the translation of above text.)
(국역본)영안도 관찰사(永安道觀察使) 이극돈(李克墩)이 삼봉도(三峯島)를 찾는 계책을 올리기를,“1. 동북(東北) 해역은 풍랑이 험악하여 다른 해역과 비교가 안되며, 또 삼봉도가 확실하게 어느 곳에 있다는 것을 모르면서 사람을 차출하여 들여보내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다만 본도(本道)의 백성들은 모두 천사(遷徙)한 무리로서 가산(家産)의 철거(撤擧)를 어렵게 여기지 않으며, 성질도 어리석고 미혹하여 속이는 말을 곧이 듣습니다. 그러니 만약 이러한 때에 이 섬을 찾아 그들이 나라를 배반한 죄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백성들이 반드시 말하기를, ‘국가에서 크게 군사를 일으켜 토벌(討伐)하려고 하였으나 끝내 하지 못하였으니, 훗날 우리들이 비록 가서 투항한다 하더라도 국가에서 결국 우리들을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한다면, 이것은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홍수와 가뭄의 재해(災害)나 전쟁의 역사(役使)가 있으면 틀림없이 도망해 가서 나라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신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금년 초무사(招撫使)의 행사 같은 경우는 혹시라도 차질(蹉跌)이 있게 되면 그 후회가 매우 클 듯합니다. 그러니 마땅히 경차관(敬差官) 조위(曹偉) 때의 예(例)와 같이 하여 본도에서 자원하는 사람 30여 명으로 하여금 유서(諭書)를 가지고 들여보내어 삼봉도가 있는 곳을 탐지(探知)하게 하여, 그 형편이 불러다 무마할 만하면 불러 들이고 만일 대적(對敵)할 수 없으면 다시 군사를 파견해 가서 토벌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갔다가 돌아오는 사이에 비록 잃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크게 후회하는 데에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1. 지난번에 왕래(往來)한 자들 가운데 어떤 이는 ‘멀리서 보았다.’ 하고, 어떤 이는 ‘보지 못하였다.’ 하니,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사람을 보내어 찾아보고, 만일 끝내 이 섬이 없으면 처음에 이 말을 한 김한경(金漢京)의 무리들이 말로 속이고 대중을 미혹(迷惑)하게 한 죄가 분명하니, 극형(極刑)에 처하여 그 시체를 온 도(道)에 전하게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보인다면, 어리석은 백성들도 삼봉도(三峯島)가 기필코 없다는 것을 알고 서로 선동(煽動)하여 미혹됨이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1. 만일 명년(明年) 봄철에 들여보낸다면 모름지기 정월 그믐께라야 모든 준비가 갖추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2월 초에 포(浦)에 도착하여 순풍(順風)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순풍을 기다리는 것은 수십일 걸리는 일이니, 만일 수십 일 동안 끌다가 장마를 만나게 되면 바람은 불지 않더라도 바다가 어두워서 끝내 배를 출발시킬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하니, 명하여 영돈녕(領敦寧) 이상에게 의논하도록 하였다. 정창손, 심회, 윤사흔, 윤필상, 홍응, 노사신, 이극배, 윤호는 의논하기를,“삼봉도를 찾는 일은 제1조(第一絛)를 따라 본도(本道)에서 자원하는 사람 30여명에게 명하여 유서(諭書)를 가지고 들여보내어서 삼봉도가 있는 것을 탐사(探査)하여 찾도록 하고, 꼭 어느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시 사자(使者)를 보내어 그들을 부르되, 혹시라도 따르지 않으면 군대를 보내어 가서 토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하니, 그대로 하라 하였다.
(해설)이 사료는 성종 11년(1480년) 5월에 일단 중지되었던 삼봉도 수토(搜討)가 다시 거론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영안도 관찰사 이극돈은, 인원을 30명으로 줄여서 다음해 2월초에 삼봉도를 찾아볼 것을 건의하였는데, 이 건의를 받아들인 성종이 대신들에게 의논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로서 삼봉도 수토가 다시 논의되었으나 그 규모는 성종의 최초 의도와는 달리 많이 축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 The description of "三峯島".
成宗實錄 > 成宗實錄 七年(1476년) > 七年 十月
○兵曹啓: “永興人金自周供云: ‘本道觀察使, 以三峯島尋覓事, 遣自周及宋永老與前日往還金興、金漢京、李吾乙亡等十二人, 給麻尙船五隻入送, 去九月十六日於鏡城地瓮仇未發船向島, 同日到宿富寧地靑巖, 十七日到宿會寧地加隣串, 十八日到宿慶源地末應大, 二十五日西距島七八里許, 到泊望見, 則於島北有三石列立, 次小島, 次巖石列立, 次中島, 中島之西又有小島, 皆海水通流。 亦於海島之間, 有如人形別立者三十, 因疑懼不得直到, 畫島形而來。’ 臣等謂往年朴宗元由江原道發船, 遭風不至而還, 今漢京等發船於鏡城^瓮仇未, 再由此路出入, 至畫島形而來, 今若更往, 可以尋覓。 請於明年四月風和時, 選有文武才者一人入送。” 從之。
[출처] 삼봉도(三峯島)-5/ 성종 7년(1476년)9월, 삼봉도(三峯島) 탐색의 사료작성자 동백
병조(兵曹)에서 아뢰기를,“영흥(永興) 사람 김자주(金自周)의 공초(供招)에 이르기를, ‘본도(本道)의 관찰사(觀察使)가 삼봉도(三峯島)를 찾는 일로써, 김자주와 송영로(宋永老), 그리고 전일(前日)에 갔다 온 김흥(金興)・김한경(金漢京)・이오을망(李吾乙亡) 등 12인에게 마상선(麻尙船) 5척(隻)을 주어 들여보냈는데, 지난 9월 16일에 경성(鏡城) 땅 옹구미(甕仇未)에서 배를 출발하여, 섬으로 향해 같은 날 부령(富寧) 땅 청암(靑巖)에 도착하여 자고, 17일에 회령(會寧) 땅 가린곶이[加隣串]에 도착하여 잤으며, 18일에는 경원(慶源) 땅 말응대(末應大)에 도착하여 잤고, 25일에 섬 서쪽 7, 8리(里) 남짓한 거리에 정박하고 바라보니, 섬 북쪽에 세 바위가 벌여 섰고, 그 다음은 작은 섬, 다음은 암석(巖石)이 벌여 섰으며, 다음은 복판 섬이고, 복판 섬 서쪽에 또 작은 섬이 있는데, 다 바닷물이 통합니다. 또 바다 섬 사이에는 인형(人形) 같은 것이 별도로 선 것이 30개나 되므로 의심이 나고 두려워서 곧바로 갈 수가 없어 섬 모양을 그려 왔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신 등은 생각하기를, 왕년(往年)에 박종원(朴宗元)이 강원도(江原道)에서 배를 출발했다가 바람을 만나 이르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지금 김한경 등이 경성 옹구미에서 배를 출발하여 다시 그 길로 출입(出入)하면서 섬 모양까지 그려 왔으니, 지금 만약 다시 간다면 찾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청컨대 명년 4월 바람이 온화할 때에 문무(文武)의 재능을 가진 자를 한 사람 선발하여 들여보내게 하소서.”
[출처] 삼봉도(三峯島)-5/ 성종 7년(1476년)9월, 삼봉도(三峯島) 탐색의 사료작성자 동백
in this document,
there are a lot of expression for 三峯島.
Later I will translate, but now.. I'm so busy nowadays,cause I will go to US 26, JUL.
TODAY IS 24, JUL.
But, there is an ordinary expression. 有如人形別立者三十, 因疑懼不得直到,
here, 30 dolls(looks human,人形) was the fur seal.
Because the distance from ship and this island was 七八里 ,7~8里= 2.744km~3.136km about 3km. So they thought the fur seal is a human.
As many people know, Dok-do was famous for the fur seal before Japanese fisherman exterminated that during 1905-1945.
And also the Dok-do was called 가지도(可支島). 可支 means the fur seal and 島 means an island as you know.
SEE YOU LATER~
http://www.historyfoundation.or.kr/OldBook/OldbookView.asp?p_gubun=oldbook&FIELD=&KEY=&PAGE=4&IDX=95
(활자본) 永安道觀察使李克墩 上三峯島搜得之策 一 東北之海 風浪險惡 非他海之比 且不知三峯島 的在何處 差人入送爲難 但本道人民 皆是遷徙之徒 撤擧家産 不以爲難 性又愚惑 信聽誑語 若不扵此時 搜得此島 明其背國之罪 則愚民必曰國家大擧欲討 而終不得 他日我雖徃投 國家終無乃我何 則非細故也 倘有水旱之災 兵戈之役 則必有逃徃背國之人 臣意 妄謂如今年招撫使之擧 則倘有蹉跌 其悔甚大 宜如敬差官曺偉時例 令本道自望人三十餘名 齎諭書入送 探知島之所在 勢可招撫則招之 如不可敵則更遣師徃討 亦爲未晩 且徃返之間 縱有所失 不至大悔 一 前者徃來者 或云遙見 或云不得見 莫辨眞僞 今也 遣人搜覓 如終無此島 則將初發言金漢京輩 明其誑語惑衆之罪 置之極刑 傳屍一道 以示衆目 則愚民亦知三峯島之必無 而其胥動之惑 自解 一 如明年春節入送 則須扵正月晦時 諸事畢辦 二月初 到浦 待風爲便 待風只數十日之事 如遷延數旬 値霖雨 則無風海暗終無發船之理 命議于領敦寧以上 鄭昌孫沈澮尹士昕尹弼商洪應盧思愼李克培尹壕議 三峯島搜覓事 從第一條 令本道 自望人三十餘名 齎諭書入送 探覓島之所在 的知在某處 則更遣使招之 如或不從 遣師徃討爲便 從之
here is a comment.
"令本道 自望人三十餘名 齎諭書入送 探覓島之所在"
Take 30 persons from this island (本島), then make them find the 三峯島.
hum.....
Then, what is the 三峯島? and which island is 本島?
We, Korean always say the 三峯島 is the "dok-do".
Because from the east cost of Korea, there is only one group of islans called "Ulleung-do" and this "Dok-do".
'Juk-do' is just one of group islands called "Ulleung-do".
go to http://en.wikipedia.org/wiki/Jukdo_%28island%29
Some Japanese say there is another island , the phantom island. There is no clear proof for the phantom island.(like a folklore)
But if you read the description of 三峯島in the next documents, you can easily understand that island is "Dok-do".
I will translate some of part to describe the 三峯島.
And also if you want to choose 30 persons for expedition, the island must be big inhebitable island.
There is only one big inhabitable island, the "Ulleung-do" where government officer can take 30 people for only the expedition.
There are only two islands, "Ulleung-do" and "Dok-do".
Because they didn't need to explore to find this 三峯島, if this island is loctated near this 本島,Ulleung-do.
Juk-do lies 2km near from "Ulleung-do".
And we can't say now about the phantom island. Phantom is just an empty talk.
So,
Therefore the 三峯島 is the "Dok-do".
Also the next document which describe more precisely the "三峯島" can help us to confirm our theory.
(The below Korean sentences are the translation of above text.)
(국역본)영안도 관찰사(永安道觀察使) 이극돈(李克墩)이 삼봉도(三峯島)를 찾는 계책을 올리기를,“1. 동북(東北) 해역은 풍랑이 험악하여 다른 해역과 비교가 안되며, 또 삼봉도가 확실하게 어느 곳에 있다는 것을 모르면서 사람을 차출하여 들여보내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다만 본도(本道)의 백성들은 모두 천사(遷徙)한 무리로서 가산(家産)의 철거(撤擧)를 어렵게 여기지 않으며, 성질도 어리석고 미혹하여 속이는 말을 곧이 듣습니다. 그러니 만약 이러한 때에 이 섬을 찾아 그들이 나라를 배반한 죄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백성들이 반드시 말하기를, ‘국가에서 크게 군사를 일으켜 토벌(討伐)하려고 하였으나 끝내 하지 못하였으니, 훗날 우리들이 비록 가서 투항한다 하더라도 국가에서 결국 우리들을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한다면, 이것은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홍수와 가뭄의 재해(災害)나 전쟁의 역사(役使)가 있으면 틀림없이 도망해 가서 나라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신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금년 초무사(招撫使)의 행사 같은 경우는 혹시라도 차질(蹉跌)이 있게 되면 그 후회가 매우 클 듯합니다. 그러니 마땅히 경차관(敬差官) 조위(曹偉) 때의 예(例)와 같이 하여 본도에서 자원하는 사람 30여 명으로 하여금 유서(諭書)를 가지고 들여보내어 삼봉도가 있는 곳을 탐지(探知)하게 하여, 그 형편이 불러다 무마할 만하면 불러 들이고 만일 대적(對敵)할 수 없으면 다시 군사를 파견해 가서 토벌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갔다가 돌아오는 사이에 비록 잃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크게 후회하는 데에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1. 지난번에 왕래(往來)한 자들 가운데 어떤 이는 ‘멀리서 보았다.’ 하고, 어떤 이는 ‘보지 못하였다.’ 하니,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사람을 보내어 찾아보고, 만일 끝내 이 섬이 없으면 처음에 이 말을 한 김한경(金漢京)의 무리들이 말로 속이고 대중을 미혹(迷惑)하게 한 죄가 분명하니, 극형(極刑)에 처하여 그 시체를 온 도(道)에 전하게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보인다면, 어리석은 백성들도 삼봉도(三峯島)가 기필코 없다는 것을 알고 서로 선동(煽動)하여 미혹됨이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1. 만일 명년(明年) 봄철에 들여보낸다면 모름지기 정월 그믐께라야 모든 준비가 갖추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2월 초에 포(浦)에 도착하여 순풍(順風)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순풍을 기다리는 것은 수십일 걸리는 일이니, 만일 수십 일 동안 끌다가 장마를 만나게 되면 바람은 불지 않더라도 바다가 어두워서 끝내 배를 출발시킬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하니, 명하여 영돈녕(領敦寧) 이상에게 의논하도록 하였다. 정창손, 심회, 윤사흔, 윤필상, 홍응, 노사신, 이극배, 윤호는 의논하기를,“삼봉도를 찾는 일은 제1조(第一絛)를 따라 본도(本道)에서 자원하는 사람 30여명에게 명하여 유서(諭書)를 가지고 들여보내어서 삼봉도가 있는 것을 탐사(探査)하여 찾도록 하고, 꼭 어느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시 사자(使者)를 보내어 그들을 부르되, 혹시라도 따르지 않으면 군대를 보내어 가서 토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하니, 그대로 하라 하였다.
(해설)이 사료는 성종 11년(1480년) 5월에 일단 중지되었던 삼봉도 수토(搜討)가 다시 거론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영안도 관찰사 이극돈은, 인원을 30명으로 줄여서 다음해 2월초에 삼봉도를 찾아볼 것을 건의하였는데, 이 건의를 받아들인 성종이 대신들에게 의논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로서 삼봉도 수토가 다시 논의되었으나 그 규모는 성종의 최초 의도와는 달리 많이 축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 The description of "三峯島".
成宗實錄 > 成宗實錄 七年(1476년) > 七年 十月
○兵曹啓: “永興人金自周供云: ‘本道觀察使, 以三峯島尋覓事, 遣自周及宋永老與前日往還金興、金漢京、李吾乙亡等十二人, 給麻尙船五隻入送, 去九月十六日於鏡城地瓮仇未發船向島, 同日到宿富寧地靑巖, 十七日到宿會寧地加隣串, 十八日到宿慶源地末應大, 二十五日西距島七八里許, 到泊望見, 則於島北有三石列立, 次小島, 次巖石列立, 次中島, 中島之西又有小島, 皆海水通流。 亦於海島之間, 有如人形別立者三十, 因疑懼不得直到, 畫島形而來。’ 臣等謂往年朴宗元由江原道發船, 遭風不至而還, 今漢京等發船於鏡城^瓮仇未, 再由此路出入, 至畫島形而來, 今若更往, 可以尋覓。 請於明年四月風和時, 選有文武才者一人入送。” 從之。
[출처] 삼봉도(三峯島)-5/ 성종 7년(1476년)9월, 삼봉도(三峯島) 탐색의 사료작성자 동백
병조(兵曹)에서 아뢰기를,“영흥(永興) 사람 김자주(金自周)의 공초(供招)에 이르기를, ‘본도(本道)의 관찰사(觀察使)가 삼봉도(三峯島)를 찾는 일로써, 김자주와 송영로(宋永老), 그리고 전일(前日)에 갔다 온 김흥(金興)・김한경(金漢京)・이오을망(李吾乙亡) 등 12인에게 마상선(麻尙船) 5척(隻)을 주어 들여보냈는데, 지난 9월 16일에 경성(鏡城) 땅 옹구미(甕仇未)에서 배를 출발하여, 섬으로 향해 같은 날 부령(富寧) 땅 청암(靑巖)에 도착하여 자고, 17일에 회령(會寧) 땅 가린곶이[加隣串]에 도착하여 잤으며, 18일에는 경원(慶源) 땅 말응대(末應大)에 도착하여 잤고, 25일에 섬 서쪽 7, 8리(里) 남짓한 거리에 정박하고 바라보니, 섬 북쪽에 세 바위가 벌여 섰고, 그 다음은 작은 섬, 다음은 암석(巖石)이 벌여 섰으며, 다음은 복판 섬이고, 복판 섬 서쪽에 또 작은 섬이 있는데, 다 바닷물이 통합니다. 또 바다 섬 사이에는 인형(人形) 같은 것이 별도로 선 것이 30개나 되므로 의심이 나고 두려워서 곧바로 갈 수가 없어 섬 모양을 그려 왔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신 등은 생각하기를, 왕년(往年)에 박종원(朴宗元)이 강원도(江原道)에서 배를 출발했다가 바람을 만나 이르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지금 김한경 등이 경성 옹구미에서 배를 출발하여 다시 그 길로 출입(出入)하면서 섬 모양까지 그려 왔으니, 지금 만약 다시 간다면 찾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청컨대 명년 4월 바람이 온화할 때에 문무(文武)의 재능을 가진 자를 한 사람 선발하여 들여보내게 하소서.”
[출처] 삼봉도(三峯島)-5/ 성종 7년(1476년)9월, 삼봉도(三峯島) 탐색의 사료작성자 동백
in this document,
there are a lot of expression for 三峯島.
Later I will translate, but now.. I'm so busy nowadays,cause I will go to US 26, JUL.
TODAY IS 24, JUL.
But, there is an ordinary expression. 有如人形別立者三十, 因疑懼不得直到,
here, 30 dolls(looks human,人形) was the fur seal.
Because the distance from ship and this island was 七八里 ,7~8里= 2.744km~3.136km about 3km. So they thought the fur seal is a human.
As many people know, Dok-do was famous for the fur seal before Japanese fisherman exterminated that during 1905-1945.
And also the Dok-do was called 가지도(可支島). 可支 means the fur seal and 島 means an island as you know.
SEE YOU LATER~
2008년 7월 23일 수요일
my graduation certificate
제 증명서는 지웠습니다. 이상한 일에 대비해서요..
I deleted my certificate, cause a bad guy can use that for evil purpose.
I deleted my certificate, cause a bad guy can use that for evil purp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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